◇겉으론 '가정 문제', 하지만...
   
이들이 내담자와 진행한 상담 유형 중 1위는 ‘가정 문제’였다. 전체 상담 중 69.3%가 가정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1위는 ‘자녀 양육 문제’로, 전체 상담 중에서도 37.9%를 차지했다.

언뜻 보기엔 직장인 고민 대부분이 회사보다는 개인사 쪽에 몰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 설명이다.

겉포장은 ‘가정 문제’지만 사실은 그 뿌리가 회사생활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녀 양육 문제 관련 상담을 뜯어보면 “회사일에 치여서 좋은 부모 노릇을 해주기가 어려워요”,

“바쁘게 사느라 멀어져 버린 자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까요”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둘째로 답변 비율이 높았던 ‘부부간 갈등’(19.1%)도 마찬가지다. 바깥세상과 무관한 각자 집안 사정 같지만,

 실제 상담 내용은 “배우자가 사회생활을 하다 우울증을 얻어 가족 모두가 힘들어요”, “일 때문에 함께할 시간이 모자라 배우자가 속상해해요” 등이다.

 김양순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 원장은 “가정 문제로 분류된 상담 중 대다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만 나아져도 해결 가능하다”며 “

과다한 업무, 비효율적인 야근, 불필요한 술자리 등 후진적인 기업문화 척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를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왜 직접 ‘워라밸’을 지켜달라 말하지 않고, 가정 문제로 에둘러 고통을 호소할까.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는 이들이 회사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거라 해석했다. 산업카운슬러와 한 상담 내용은 100% 비밀을 보장하며 회사에 내담자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직장인들은 두려움을 걷어내질 못한다. 기업에선 어떻게든 신원 파악을 해, 회사 관련 불만을 토로한 이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걱정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런 직장인의 회사 불신은 결국 회사가 빚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대부분은 컨설팅에는 수억 수십억을 우습게 쓰면서도 정작 사원 복지와 봉급은 깎으려 든다”며

 “그런 모습을 보고도 ‘여러분을 위해주겠다’는 회사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직장인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소통

세 번째로 많았던 상담은 ‘정신 건강 문제’(14.5%)였다. 우울증, 무기력, 폭식증 등이 주로 나온 고민이었다 한다. 김 원장은 “이 또한 대부분이 회사가 입힌 상처”라며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마음의 병으로 옮아가 생기는 병이다”고 했다.
 
회사는 어떻게 직장인 마음을 좀먹는 것일까.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는 “핵심은 소통 문제”라 해석했다. 구시대 사람인 기업 간부들은 젊은 직원이 정확한 시대 트렌드를 알려주거나 바른말을 해도 용납하질 못한다.

 결국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건방지다 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꽉 막혔다 생각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합리적 성향이 강한 신세대는 윗사람이 무작정 ‘하라면 해’라며 우기는 걸 잘 받아들이질 못한다”며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매일 마주하니 자연히 정신 건강에 손상이 온다”고 말했다.

◇사람이 먼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인 스트레스 문제 대부분은 회사에 대한 ‘불신’과 ‘소통 부재’에서 온다. 하지만 모든 일터에 만능으로 적용 가능한 범용 해법은 없다는 게 한국산업카운슬러협회 의견이다.

 이는 기업마다 갈등 양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구세대-신세대 갈등 비중이 큰 회사가 있는 반면, 생산직-사무직 사이 반목 해결이 시급한 기업도 있다. 어떤 회사는 성별 갈등 해결이 급선무일 수도 있다.
 
다만 어느 회사건 조직 구성원 간 소통을 개선하거나 사원 심리상담 혜택을 늘리거나 비효율적인 업무 관행을 척결하는 등, ‘사람’을 위한 정책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건 공통이라 한다.

김 원장은 “기계는 매일 정비하면서도 사람은 대충 쓰다 망가지면 갈아끼우며 버티는 기업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자들이 사람의 중요성을 보다 깊이 깨닫고,

또한 사원 복지 시스템 미비로 벌어지는 문제를 직원 개개인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뒤집어씌우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잡스엔